이자람씨의 창작판소리 억척가,는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이 시대에 제대로 호흡한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2시간 반여를 지루함 없이 혼을 쏘옥 빼놨다. 너무 집중해서 어깨가 뭉칠 정도.
친근허니 웃으며 관객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 그녀는,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부짖고, 높게 지저귀고 낮게 으르릉대며 1인 15역을 무섭도록 소화해냈다. 구성지게 소리를 내어 김순종이 안나김으로, 그리고 억척네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다채롭게 펼쳐보였다. 시종 잃지 않는 유머감각으로 시대와 장소-국경-, 옛언어와 현대어,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을 뒤섞어 무대를 풀어나간다.
고수와 창자만이 존재한다는 옛 판소리의 형태를 전통 그 자체로 지켜도 좋았겠지만, 그녀는 북, 장고, 꽹가리, 징 등의 전통 악기와 베이스와 아프리카의 퍼커션을 섞어 악곡을 채우고, 때로는 은빛으로 빛나는 마이크를 직접 쥐고 노래하기도 했다.
베를로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원작으로 했다는 이 작품은 탄생지는 독일이요, 배경은 17세기 30년 전쟁, 그 안에서 전쟁을 먹이감으로 자식들 다 잡아먹으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인생 얘기. 그 이야기를 이자람씨는 한국에서 연변으로, 연변에서 중국-그것도 삼국지의 시대-으로 옮겨가며 쉴새없이 억척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찌보면 뜬금없다. 창소리에 섞여 "히치하이킹" "베라먹을 쉐끼-"같은 언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 어떤 형태도 그 무대에선 있을 법 했다. 아니 태초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거기에 존재했다.
그게, 이자람씨의 <억척가>의 대단한 점이라고, 그렇기에 창의 ㅊ자도 모르는 나같은 무지랭이도 정신없이 웃고 눈물 툭툭 떨궈 울면서 그 생의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었다고.
진정한 재능은 사실, 모든 경계를 넘어 시와 공을 섞어도 그것이 "있을 법한 무엇"임을 납득시킨다.
나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결과물을 몇번인가 봐왔고, 이자람씨 역시 그런 존재라 느꼈다.
그것이 "창작"이며 "아트"라고 불리는 영역의 것일지도.
LG아트센터의 1000석 좌석을 배경을 삼아, 오히려 무대 안쪽에다 350석의 좌석을 재배치한 객석은 억척네가 둘째 아들을 잃고 막내딸을 잃을때, 그녀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함께 온몸의 떨림과 같은 진동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해주는 특별 장치이기도 했다. 땅 깊은 곳으로부터 드르르릉- 울리는 전율은 실제 흔들리는 발밑을 통해 더 실감나게 와닿는다. 아아, 지금 그녀의 울부짖음은 천재지변과 같은 것이구나- 하고.
심플하지만 보기 편했던 무대도, 우측에 배치된 밴드의 활용도, 가장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떨어지는 무대 뒤 커튼의 연출도, 그리고 원래는 객석이었어야 할 그 곳에 드리워진 기다란 천의 길도. 훌륭했다.
무엇보다도 이자람씨. 이쁘다!!!! ㅎㅎㅎㅎㅎㅎ
관객들이 모두 얼씨구- 등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나게 관극했지만, 그 중에서 이자람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추임새는 이쁘다-!!! 였다. 이뻐요 정말 자람씨 이뿨-----------
공연은 겨우 5회뿐, 한회에 들어오는 사람 수는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 5회의 공연조차도 실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무리가 가는, 부담스러운 공연이란다.
아깝고 원통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자람씨를, 그녀의 억척가를 봐주면 좋겠는데. 되려 내가 자랑하고 싶어서.
이정도까지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이 서러워진다.
똑같이 태어나서 나란 인간은 어찌 이리 하잘 것 없이, 인생을 시간떼우듯 살고 있는지.
하다못해 억척네처럼 억척스럽게라도 살든지.
대단한 족적, 역사의 한길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데.
그저 인생 끝날때쯤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좀 자도 돼- 같은 인생, 살아야 할텐데.
지금의 나로선 그때가서 그저 '또 자냐?'하고 물을 것만 같다.
안좋다 이런 인생.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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